[책] 커피기행

| 2009/04/16 02:44 | 프리버즈

와인을 마신다고 빈티지 차트를 줄줄 외우고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락을 듣는다고 하여 전지에 장르의 계보를 그려 벽에 붙여놔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배경과 역사를 알고 즐기는 것과 모르고 즐기는 것의 음미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쌀 한톨에도 농부의 땀, 하늘의 비와 바람, 그리고 땅이 담겨 있는 것 처럼, 우리가 편하게 마시는 커피도 먼 이국의 흙, 바람, 태양, 그리고 많은 이들의 땀을 거치면서 완성된다. 그 누군가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주고, 수확을 하고, 껍질을 벗기고, 등급을 나누고, 시장에서 경매를 하고, 로스팅을 하고, 분쇄를 하고.. 추출을 하고....

'커피기행'커피박물관을 만들고 커피 나무를 키울 정도로 커피에 대한 애정이 깊은 박종만 씨가 2명의 지원자, 그리고 다큐멘터리 PD와 함께 떠난 커피의 원산지들을 여행한 커피 로드에 대한 기행기이다.

케냐 - 탄자니아 - 에티오피아 - 지부티 - 예멘 - 터키로 이어진 여행은 철저히 '커피농장과 커피의 기원'을 좇는다. 이 책은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다큐를 좋아하고, 여행 다큐를 즐겨보지만 케냐, 에티오피아와 같은 커피의 산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봐도 커피에 대해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 찾아보면, 1997년에 세계 커피 기행이라는 다큐멘터리도 했고, 커피에 대한 다큐들이 있긴 하지만.. 요즘은 그나마 '김반장의 자메이카 기행' 의  블루마운틴 산맥의 커피 농장 방문편이 내가 본 가장 자세한 다큐였다.

커피의 발자취를 좇으며, 각 산지별로 커피가 어떻게 재배되고, 유통되고, 육성되는지를 적어가고 있다. 박중만씨가 커피재배에 큰 관심을 갖고, 직접 나무를 가꾸고 있기 때문에 재배 방법이나, 기후, 토양 조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 내지는 평가는 즐거웠다. 빠질 수 없는, 산지별로 맛보는 그들의 방식으로, 우리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커피들,에대한 묘사는 가볼 수 없고 마셔볼 수 없는 우리에게 간접체험의 기쁨도 주고 있다.

커피를 통해 경건한 의식(커피 세레모니)을 수행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는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 비싸서 즐길 수 없다는 농부들, 또, 이제는 커피는 과거의 산물로 전락하고, (마약의 일종인) 카트나 밀크티를 애용하는 예멘 등에서 커피가 그들에게 갖는 의미를 살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책은 결국 '여행기' 인지라,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는 기대를 갖고 책을 읽으면 실망할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의 여행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박중만씨가 본디 작가가 아닌지라, 필력의 흡입력이나 감동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커피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이를 상쇄해주지만 말이다. 기행기 이상의 것을 얻고, 좀 더 정리된 뭔가를 원한다면 커피견문록이 더 잘 맞겠다.

'더 좋은 품질의 커피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지만' 제대로 관리/육성되지 못한 몇몇 산지들에 대해 현대화의 필요성을 말하는 그의 의견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되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까? 결국 또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세계로 입성하는 건 아닐까), 커피에 대한 그의 열정에는 경의와 존경을 표한다.

올 여름이 가기 전에 커피박물관에 한번 가봐야겠다. :-) 그리고, 다큐도 보고 싶다. (있을까 T_T)

그리고, 거대자본에 가려져 하루종일 일해봤자 고작 1,000-6,000원을 받는다는 농부들을 위해 공정무역이 좀 더  확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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